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이라고 부르는 것은
수면에서 일어나는 물결과도 같은 것입니다.
생각은 늘 '옳고 그름이나, 좋다 나쁘다'등의 판단이나 분별이 대부분이어서
그 자체가 양상을 바꾸어 가면서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도록 하는 작용으로
생각을 '창조의 도구'로 쓰고 사는 사람들 자신이 관리하기 나름이기는 하겠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살아오면서 길들여진 결과여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진실을 대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작용에 그치고 있답니다.
그렇지만 쉬지않고 일어났다 사라지는 생각에 휘말리지 않으면
마치 물결이 일어나지 않을 때는 수면이 잔잔해 지듯이
의식이 전적으로 수용적이 될 때는 고요해 집니다.
의식이라는 바탕에는
온갖 생각들이 나타나서 잠깐씩 머물다가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서
'생각이 일어 나거나 사라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가 있습니다.
지켜볼 때는 어떤 생각에도 끌려가(좋아하)거나 배척(싫어)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쪽의 생각에도 빠져들지 않고 휘말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용하고 세심하게 주의를 기우려 '지켜보면서 함께하기'를 지속하면
쓸데없는 모든 생각들이 서서히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드디어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경험은 에고(ego)를 넘게 되는 즉, 실제로 에고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말에 "에고, 죽겠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자신의 생각이 뿌리채 사라지는 것을
진실로 경험하면 삶이 얼마나 홀가분한지! 를 실감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잘 할 수가 있으면 좋겠지만,
상당히 주의력을 요하는 의지를 깨어나게 하는 작업이기에 안내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할 수가 있을 정도로 연습을 해야만 쉽고 또 가능할 겁니다.
이것은 '존재함'에 머물면서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관찰자의 입장에서
아무런 판단이나 간섭함이 없이 의식의 흐름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몸이나 마음의 혼합체라고 여겨오던 지금까지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으로는 도저히 미치지 않는 근원의 입장으로 바뀌는 경험입니다.
전체성의 드러남이지요.
이 같은 주의 깊은 작업은
지금까지는 접한 적이 없어서 미지로만 여겨오던
우리의 근원이 의식의 표면으로 드러나와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신비라고만 여겨왔던 많은 것들을 알 수가 있도록하는
지금까지는 쓰이지 않고 있던 무한한 능력(에너지)을 풀어 놓을 것입니다.
걱정이나 근심이라는 '생각의 쓰레기'들을
좋아서 갖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요?
그런 생각의 쓰레기들이 괴로움은 물론, 가난이나 병을 만들어 내고 심지어는...
생각을 다스리는 것은
그런 쓰레기들을 다루어 사라지게 하면서
홀가분히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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