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3월초 방배동 언덕배기에 위치한 댁으로 처음 뿐선생님을 뵈러갔을 땐 도사를 만나게 되면 궁금한 것을 묻는 즉시 시원한 해결책을 일러 주실 것이고, 내가 가진 괴롭고 어려운 일들이 순식간에 해결되고 정리되기를 내심 은근히 기대를 했었다. 그렇게 나는 삶의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 절실한 심정이었고, 10년 정도 <도>를 닦았지만 결실은 없고 절박하기만 했었다. 방안에 들어서는 순간, 묘한 분위기에 할 말은 잊어버리고 권해 주시는 녹차만 여러잔을 마셨다. 계속 권하시길래 그만 하겠다고 했더니 편하게 앉으라고 하시면서 벽에 기대어 놓은 첼로를 끌어당겨 말없이 연주를 하셨다. 가곡과 동요등의 여러곡을 쉬지않고 계속 연주를 하셨는데, 여러곡은 두들겨서 연주하셨고, 그 표정은 참 묘한 분위기여서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웠고 감상이라기 보다는 우두커니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세시간 정도의 연주가 끝나고 나니까 질문할 말들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당시에 나는 세검정의 빌라에 살면서 마포의 현대빌딩에서 직원이 7명인 작은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지만, 사무실 월세도 제때 못내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았고 그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여기 저기 명상이나 도(?)를 닦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 중에도 참으로 다행인 것은 필요하다면 자유롭게 시간을 들여서라도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쓸 수가 있었기에 대부분의 시간은 `나'를 찾고자 애쓰면서 찾아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 출근하면 급한 일만 처리하고 나서는 방배동으로 달려갔고 그 때마다 첼로 연주는 계속되었다. 질문할 것을 잘 메모해서 준비하여 갔지만 막상 도착해 보면 질문할 마음이 나지가 않아서 메모지를 마지작 거리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거의 매일을 그렇게 메모를 해서 갔지만, 그 메모지들은 쓸모가 없게 되었으며 얼마가 지나면서 질문할 꺼리가 점점 없어졌고, 드디어는 첼로 연주를 듣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그렇게 석달이 다 되어 가던 6월초 어느 날 선생님께서`한국의집`에서 친구분 따님의 결혼식에서 첼로 연주를 하셔야 된다시며 첼로를 메고 갈 사람이 없으니 빨리와서 첼로를 메라고 전화를 하셨다. 그날따라 회사일이 바빴지만 대충 챙기고는 그 일을 했다. 결혼식 연주를 마치고 나서 피로연장에 가기전에 충무로 입구의 조그만 통닭집에 잠깐 들렀고, 거기에는 주인도 없이 우리 두사람만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얼른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 양반은 돈도 벌지않고 천하태평이구나!` 하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쳐다보다가 서로 눈이 마주쳐서 한 참을 바라보던 중 저절로 모든 사물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이것이구나 !"하는 진실을 알게 되었고, 아무 생각도 없는 편안함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길로 세검정 집으로 함께 돌아가서, <뿐 선생님>은 다음 날 세벽까지 계속하여 첼로 연주를 하셨고, 나는 그 첼로 앞에서 눈물을 쏟으면서 앉아 있었지만 조금도 시장끼를 느끼지 않았었다. 그 후로 3개월 정도를 나는 발이 땅에 닿지않는 듯한 가볍고 자유로움을 느끼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다녔지만 시도 때도 없이 하염없이 눈물과 콧물을 흘리면서 다녔었다.
그 시절, 종로1가 YMCA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다 보면 가끔은 옆에 서있던 사람이 느닷없이 "차 한잔 함께하지 않겠느냐?"며 자기가 사겠다고 해서 부담없이 아주 여러번 얻어 마신 적이 있었다. 그 때마다 묘한 것은 남자건 여자건 마주 앉으면 전혀 낯설지가 않고 전혀 남같은 느낌이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처음은 아닌 것 같고 어디서 만났느냐?"고 물어오곤 했었지만 느낌으로만 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3년정도를 세검정에서 <뿐 선생님>을 모시면서 자기발견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너무나도 큰 은총이었던 것이다.
항상 상투를 틀고 흰수염을 흩날리시면서 조금의 흔들림도 없으시던,
늘 인자하셨던 그분의 모습을 이젠 대할 수 없지만---
이제 그 이는 고향으로 가셨지만, 나를 늘 고향에 편히 쉬게 하셨습니다. 마음의 고향 !
내 삶의 의미가 그 이의 삶의 의미와 같은 <하나> 였음을 알려 주셨기에 이젠, 나도 누군가에게 <하나 임>을 전해 주면서 살고 있네요! 오늘은 오래 전의 내 모습을 그대로 닮은 한사람이 9일간을 함께한 결과, 짤막한 글을 써 왔지요. 눈뜨ㅡ신 모습이 아주 편안합니다. 행복하다. 따뜻하다. 힘차다. 이거다 ! 내가 그토록 원하고 찿던 것---그 동안 많이도 찿고, 배우고, 원했지만 왠지 깊은 곳에서아니다, 아니다, 왠지 아니다 라고 했던 이유도 이제는 알겠다. 남은 것은 더 많이 실천하고 하나가 되는 것---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너무나 감사합니다.
'본성대로 흐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에 살기 (1) | 2003.10.09 |
---|---|
삶은 선택이다.(1) (0) | 2003.10.08 |
방황의 시간들 (0) | 2003.10.06 |
거짓말의 역사가 Ego를- (2) | 2003.09.29 |
꿈에서 깨어나다 (1) | 2003.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