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그냥 있는 것입니다. 잘 사느냐? 못 사느냐?의 기준을 누가 감히 정할 수 있단 말입니까? 또 누군가가 결정 한다손 치더라도 어느 누가 그것을 따르며, 누가 인정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우리 모두 스스로가 선택하고 인정할 뿐입니다.
이것은 삶에서 길들여진 모습 즉, 사고(생각 하는것)가 길들여진 양식에 따라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있음을 뚜렸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은 이 차이 때문에 사회 전반에 걸쳐서 심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살아온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당사자의 선택과 아울러 주변의 상황이나 여건등 많은 정황과 배경들을 함께 고려하여 결정이나 판단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서양에서는 개별적인 성격이나 능력, 당사자의 경향성등, 개인적인 부분만을 강조하여 선택하고 판단함으로 동서양은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관념의- 차이가 바로, 시공의 차이가 거의 없는 정보화의 시대가 되니까 혼란으로 느껴져서 서로의 눈 높이가 맞을 때까지는 계속될 것입니다.
오래 전에 어떤 여가수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입국했을 때, 우리사회가 너무나 놀라고 반향이 컸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서양에서는 그것은 그 한사람의 선택일 뿐입니다. 이것은 좋다거나 나쁘다 또는 맞다, 틀리다 하는 시비를 가리고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고방식의 관점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식은 우리의 생활전반에 걸쳐서 깊숙히 자리를 잡고 있으며 관혼상재나 사회나 국가의 제도들, 사회적 신분, 지방색과 차별, 사회의 기득권, 학벌이나 출신학교등 사회 전반에 걸쳐서 팽배해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사회에 실력이 위주가 아니라, 목소리 크기나 배경이나 파당의 크기로 나타나서 혼란에 휩싸이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지만, 차츰 차츰 실력위주로 진화해 가는 과정으로 혼란기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생력을 키워가는 중인 것입니다.
왜 혼란할까요? 이것은 기존의 길들여진 생활의 편안함 때문에 새로운 선택을 하여야 성장을 하게 되는 창조의 도리를 망각한, 변하지 않으려고 하는 두려움의 몸부림일 뿐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선택을 변화라고 하는 것이며, 응당의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새로운 선택에는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나 벽을 만나게 되는지가 아니라, 그냥 자기에게 맞는 새로운 비젼을 선택하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선택을 하면 선택을 하지않은 입장에서 보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저항하는 것이지요. 이 반작용은 두려움의 표출인 것입니다. 이것은 휩싸임 입니다. 그렇지가 않으려면 스스로가 선택을 하면 의식은 자연스레 다음 과정으로 진행되어 발전되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삶은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지만, 그냥 흘러 간다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삶은 그 때 그 순간의 선택이고, 우리 모두는 선택한 것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아닌, 그냥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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