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에는 춥게만 느껴지던 겨울 날씨가 새롭게 우리 곁에 와있다.
이런 기후는 매순간을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물러서는 변화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것은 인간이 자연에서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로써
은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만물가운데서 우리 인간만 과거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지나간 것들을 내세우며 되풀이 되는 생각의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해
지치고 힘들어하는 고달픈 모습을 볼 때는 참 안타깝다.
이런 습관은 우리가 타파해야 할 좋은 재료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꼭 넘어야
할 벽이다. 생각을 다루지 못하여 굳어진 습관의 벽을 허무는 삶이 쉽지만은
않기에, 아직도 소수의 사람들이 스스로 터득한 방법으로 겨우 이어가는 정도의
귀한 모습의 삶, 굳이 이렇게 사는 것은 조그만 울타리 안의 한정된 사람들만의
삶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 아직도 인류가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방식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생명의 진실된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사는 것은 무엇보다 자유와 평화를 누릴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활동을 통하여 생명의 한계없음을 드러내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은 스스로 나타낸 모습에 가려져서 스스로를 보지못하고
자신의 생각에 갇혀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은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공존하며 서로 길과 생명을 진실되게
나타내고 있지만, 조금은 순수하지 못한 숨은 의도 때문에 소리만 높게 외치다
보니 공허한 메아리만 되돌아 오게 한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것은 진실이다. 그리고 순수하다.
이 모습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늘 '지금 여기'에 함께해 왔지만,
제대로 알아 차리고 생활한 사람이 극히 적은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았기에 알아차리지를 못했을 뿐이다.
이 우주는 기록에 남아있는 능력있는 단지 몇 사람만의 삶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우주이다. 그렇다면 왜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 것처럼 보일까?
원인은 하나, 그 것을 인식하고 제대로 사는 것과 모른체 외면하다가
습관이 되어서 사는 것의 차이 뿐이다.
길가의 작은 풀포기 하나에서 부터 국가나 세상을 뒤흔드는 권력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같은 생명의 순수함 즉, 신성을 갖고 있지만 그 것을 사는 것은
각 생명체의 몫이다. 작은 풀꽃에서나 살인자의 칼 끝에서, 사나운 독사의
이빨에서나 난장판 같은 국회의원의 욕설 조차도 성자의 부드러운 웃음과
조금도 다를 바는 없다.
꼭 같은 모습은 아니더라도 어느 한 순간도 이 우주를 이루고 있는 그 신성과
순수함은 조금도 퇴색되거나 사라지지 않은채 작용하고 있다.
이것을 여러 종교에서 나름대로 소리높여 부르짖기도 하지만
호화롭고도 웅장한 건물을 통하여 나타내는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과 그만큼
빛을 잃었음을 스스로가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음'은 존재 가치를 웅변으로가 아니라 실존으로자유와 평화를 드러낸다.
이런 '힘을 표출하는 삶'에는 진실함이 있기 때문에 가까이 하는것 만으로도 자유와 평화를 느낀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 고루깃들어 있는 신성을 순수하게 쓰는 것이 우주가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갈때우리 사회는 진실로 밝고 활기찰 것이다.
순수한 가슴이이끄는 쪽을 따르면언제나 평안이 함께 합니다.
여러분 모두를 사랑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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