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것을 투자하면서도 수 없이 많은 비난과 비웃음을 뒤로흘리면서 까지, 모질고도 험난한 힘든 고비를 넘기고 나니,이제야겨우 10년 넘게 좀 한가히 살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친구, 동료, 친척, 가족등 모두가 떠나더니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온다.
2004년 11월 11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나'라고 부를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대신 그 이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 이가 내 눈을 통해서 보고 있었지만, 이 전까지는 내가 보고 있다고 해 왔던 것이다.
늘 함께해 왔으면서도 한번도 그 이를 보거나 알아 챌 수는 없었다. 본다고는 하지만 눈으로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앎의 상태'라고 하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드러나지가 않아서 누군가 물어오면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는 없지만, 누가 뭐래도 알 수는 있다.
그 이는 언제나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배후에서 지켜보며 함께하고 있었기에 자연히 알아채지를 못하게 되었다고나 해야할까?
그 이를 처음 느낀 것은 어릴적 추녀끝에서 반짝이는 물방울로 떨어지면서 조그맣지만 또렸하고 청량한 소리를 내어서 응석을 부리며 울고 있던 나의 주의를 끌어 눈물을 거두게 해 주었던 순간이었다. 다음으로는 좀 더 자란서 개울가에서 물놀이를 하며 놀던 중에 일렁이는 물빛이 눈부시고 투명하게 손등을 비춰져서 신기하게 살폈봤던 때였고...
그 뒤로 기억이 사라지지 않을 만큼의 사이를 두고, 사물의 모습과 함께 드러 내었기에 유심히 살펴보기를 거듭했었지만 안타깝게도한번도 제대로 알아 챌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 때마다 별다른 생각없이 고요하고 편안했던 느낌 때문에 그것을 유지해보고 싶어서 다시 시도해 보기도 했었지만 번번히 뜻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렇게 베일에 쌓인듯한 존재의 속내는 자기가 스스로 그렇게 생각을 지어내고 그대로 경험이 되어서 원질로 돌아가 버렸지만,기억하려는 욕망으로 오므라들어서 습관으로 굳어져 고정화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라고 그다지도 굳게 믿으며 지키고 있었던 것이 이렇게 실체가 없는 꿈같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라니!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 인간이 현실이라고 여기며 또 그렇게 불려지는 우리 모두의 삶이라는 형태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었구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는 그것을 드러나게 하는 청사진이 있다.
그 청사진 자체는 드러나지 않아서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형태있는 모든 것들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한계없는 가능성과 힘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스스로는 어떤 한계나 제약이 없어서 만물의 모습을 갖추어 제 때와 곳에 보여질 수 있도록 정확히 드러난다.
이것이 인간의 삶을 포함한 우리내 자연계의 청사진이다.
이 청사진은 내면에 완전한 가능성과 지혜가 함께하여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여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지만,주의를 기울여 세밀하게 탐사해 가면 그 상태를 알아 차릴 수가 있다.
이것을 알아차리는 것을 이전까지는 별개의 존재인 절대적인 창조주의 비밀로 간주하여 가까이 접하는 것조차 금기시 해왔기 때문에 왠만한 사람들은 감히 살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여 자연히 묻혀 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전 어느 때까지는 자기 자신의 나타남의 원리를 알지도 못한채,
누군가 밝혀놓은 것을 따라 하려고만 해왔지만,
어쩌다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금단의 구역을 무단으로 들어가는 형편없는 고집불통이나 잘못된 인간으로 치부하고 백안시 하기에 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 때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가까이 접근할 엄두를 내지 않게 되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로 여기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