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이어짐)-
창조하기가 자연스러워지는 것은
처음에는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에고의 만족을 위해서) 창조하던 것들이
차츰 익숙하고 만족스럽게 이루어지는 단계를 거치면서
어느 순간 '자기'라고 믿어오던 것들마져 헛된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자신이 전체의 드러남이라는 관점으로 의식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자기라고 알고 살던 개별의식이 집단의식으로 확장이 되면
어떤 창조든 그 목적은 '경험하기 위해서' 라는 의도를 보게된다.
사람이 무엇을 하던 자기의 의도를볼 수가 있을 정도가 되면 동기가 순수해진다.
이것은 '자기 자신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한 것에 책임지기'를 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입장은 조정자가 아니라, 창조자이다.
누군가를 신뢰하지 않는 것은
바로, 높은 자아가 스스로의 진화를 위해서 필요한 경험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이 여정의 다음 이정표는 '연결하기' 이다.
이 즈음에는 누구든 ,어떤 존재이든 같은 마음을 갖게 되어서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 깨어난다.
이 존경심은 신뢰와 실천함으로 깨어나서
새로운 목적과 모험으로 가득찬 일상이 된다.
이 삶은 더 넓은, 더욱 편안한, 더욱 포용적이어서
모두와 어우러지게 되어서
'모든 것을 음미하고, 감상하기'가 자연스러워진다.
이 자연스러운 음미, 감상으로
좀 전까지 한계라고 느껴지고 여겨지던 낡은 제약들이 모두 사라져서
'있는 모든 것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보게 된다.
이 무한 한 가능성은
위대한 생명체의 죽음의 노랫소리가 슬픔을 가져오게 하면서도,
갓 태어난 생명체의 울음소리가 새로운 희망을 실어오게 허락한다.
이 여정에서 필요한 것은
오직, 자기의 의지를 통제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음미, 감상속에 머물면 머물수록 삶은 더욱 신나고 자유로우며
만사는 가장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알고, 느끼기에
살아 있는 자체로 우주의 흐름에 기여하여
마지막 이정표 '밝은 문명을 창조하는 것'으로 여정은 막을 내린다.
이정표 대로 밝은 문명을 창조하는사람들은
세상안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서 벗어나 있다.
이들의 사명은 자유와 평화를 누리면서
이 세상에 빛을 뿌리는'빛의 사자(使者)' 역활 이다.
이 삶은 '심리 요법'이나 '마음을 다스리는 정도'의 일이 아니라,
의식 자체를 전환하고 확장하는 길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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