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이틀을 세차게 휘몰아 치던 바람이 지나가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듯 평온하고 화창한 날씨다.
외등이 날아가고 정원에서 노랗게 익어가던 하귤들이 바닥에서 나뒹구는가 하면
장독의 뚜껑이 넘어져서 깨지기도 했고, 쓰레기 통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 정원구석에는 낙엽들이 수북했다.
어저께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바람이 몰아온 쓰레기는 물론, 묵었던 것들까지 깨끗이 청소를 하고 나니
집 안밖에는 봄 기운이 가득하고 고마움의 향기가 그득하다.
개나리와 매화가 꽃을 피우고, 복수초의 노~랑 꽃에 보라색의 로즈마리 꽃,
비파의 흰 꽃과 동백의 빨간 꽃에 노랗고 향기로운 산수유꽃이 맑은 햇살에 선명하다.
일을 끝내고 나서, 모처럼만에 몇 명이서 함께 저녘을 먹기로 하고
한 사람이 음식맛이 좋았더라는 제안에 이태리식 음식점을 갔다.
간판부터가 다르게 보였다. 해안도로 입구에 깔끔한 정원의 유럽풍 벅돌집에
조그맣고 예쁘장하게 'Stepan's House'라고 영어로 쓰여진 간판인데
내부는 이태리의 왠만한 음식점보다 설비가 훌륭하고 분위기도 따듯했다.
나무를 때우는 무쇠난로가 입구에서 온기를 피우는 아늑함은
밖에서 보기 보다는 다르게 엄청 평온하게 느껴젔다.
한쪽 벽에 걸린 세 사람의 흑백 사진은 주인의 가족인 듯하여서
서빙하시는 분께 물어 보았더니 그렇다는 대답이었다.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고 식사를 하면서 이태리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맛 보았던 전통 음식들과 비교를 해 보았지만 전혀 손색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으며 추억을 씹는 맛은 오감 중에도 미각만한 것이 있기나 할까?
몇 년전 이태리에서 유명하다는 천년이 넘는 고성(古城)에서 먹어봤던 음식 맛보다
뒤지지 않은 식사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접할 수가 있다는 행복감에 졎어 있을 때...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 비행기로 와서 한라산 등반을 하고 내려와서 저녘 먹는 중이라며
동료들과 함께라서 어떨지 모르지만 형님 집에 잠깐 들렸다 가겠단다.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집에 와서 자라고 했더니 50명이란다.
돌아와서 며칠 뒤에 있을 공연 준비를 하느라고
색소폰으로 몇 곡을 불고 났는데도 온다던 사람이 소식이 감감하여
전화를 했더니 아무래도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놀러온 사람이 뭐가 그리 바쁘단 말인가? 하면서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순간 섭섭해 하는 마음을 알아 차리고 한참 동안 그 섭섭해 하는 마음을 다스렸더니
그 자리에는 고마움이 넘쳐나게 되었다.
그 순간에, 육십이 다 되어가는 동생을 위해
내가 정말해 줄 수 있는 일은 고마움을 느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 생에서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기대하고 바라며' 살아 왔단 말인가!
그래서 얻은 것들은 무었인가?
지금 있는 것들에 고마움을 느끼거나 감사함을 표현한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바라는 마음이 바로 '바람'이 아닌가! 더 이상 바랄 것은 없다.
모두가 고맙고 감사한 것 뿐이다. '우주는 자기가 보는 것만'을 주고 있다.
하나의 문을 열어야만 다음 문을 열 수가 있다.
이런 것을 '지혜의 길'이라고 했던가!
동생은 이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한 것이다.
사람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돌보지 않으면 곧,
생각하는 습관이 자리를 하여 그 벽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혜의 길'은 '생각의 길 넘어에로' 함께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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