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어디로나 통하고 있다.
우선 넓은 길이 보이고 좁은 길도 어디로든 이어져 있다.
지금까지 느긋하게 이길 저길을 다녀보았다.
어딘가로 올라가는 길은 거의 어김없이 좁고 가파르고
돌아 오는 길 또한 거칠기는 매한가지다.
넓은 길은 주로 평지에 해당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편리한 길이다.
그러데 우리 사람들이 살아가는 길은 자기가 보아도 확실하지 않은
폭도 깊이도 알 수없는 어렴풋한 참으로 묘한 길이다.
이 길은 오로지 오직 자기 혼자만의 스스로 가는 길이다.
누구도 대신갈 수도, 알 수도 없는 길. . .
스스로 살아서 드러낸 자취만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가 있다.
그 흔적마저도 짐작하거나 짐작될 뿐이지 확연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살펴보니 무엇하나 확실하게 "이거다"하고 말할만한 길이 삶에는 없는 것인가?
그래서 삶은 왕도가 없다고 하면서도 대도무문 이라고도 했던가!
오늘은 이 삶의 길에서 한면을 살펴보고 내삶 이라고 하는 것을 들추어 보자.
얼마전 한 재벌가의 촉망받던 아들인 총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우리들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기억을 하면서 내 삶과 비교를 해본다.
같은 해에 태어나 내가 이 세상을 처음 대한 곳은 낙동강변의 작은 시골마을이다.
다른 성이라고는 송씨 한집과 안씨 한집 그리고 6.25사변으로 갈 곳을 잃어서
동네에서 허드렛 일을 해주고 의탁하며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는 송씨의 친척 한집이 있었고,
그리고는 모두 박씨들로 아래 윗마을을 다 합쳐서
오십여집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살던 한가로운 시골의 마을이다.
길이라고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있으면
옆으로 비켜설 곳이 없어서 한 발을 내려서야만 되면서
서너발은 올라서야 다시 갈 수가 있었던 좁은 마을 길이 동네 앞 동구밖까지 나 있었다.
지금은 기찻 길이 있는 역전 마을이 되어 수많은 자동차와 기차,
심지어는 멀지 않은 곳에 비행장마져 생겨서 서울 부럽지 않은 곳이 된 마을이다.
그런 고장에서 가난한 농가의 맏아들로 태어나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전국 곳곳을
떠돌듯이 살아오다가 이제는 서울 강남의 포이동에 자리를하여 살고 있다.
위의 그 재벌의 아들과 시골 농부의 아들인 내가 살아가는 것은
부모의 직업이나 태어난 환경만 다를 뿐 각자가 살아야 할 길은
우리 각자의 할 몫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 삶에서 갈 길은 끝내는 한길일 것이다.
그 길은 아마도 이생에 오면서 스스로가 택한 길은 자기를 발견하는 길이다.
그러려면 "나는 누구인가?"를 제대로 해야만 하지 않을까?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아무리 대단한 것을 한다고 해봤자,
결국에는 내가 왜 이 세상에 왔던가?로 결말이 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참 나 ! 참 나, 원(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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