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일
점심을 먹은 뒤 정담을 나누다 보니 오후 2시가 넘었다. 길을 물어 광주 시가지를 벗어나서 남쪽으로 달렸다. 시내를 벗어나는 사이에 빗줄기는 그쳤지만 이따금 가랑비가 조금씩 흩날려서 저멀리 나즈막한 산허리나 골짜기로 운무가 드리워진 풍광은 저절로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도록 끌어 당긴다. 잘 짜여진 수묵화와 한모습이 되어서 저절로 어우러지게 되었다.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환상적이면서도 신비로움에 졎어들어 산천경계와 하나되는 경험은 이 지방이 수묵화의 고장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님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보성의 녹차밭을 들릴 예정으로 갔지만, 날씨가 어두워서 바닷가 쪽으로 향했다. 해수탕에 들릴까도 했으나 그나마도 여의치 않아서 출출한 김에 저녘부터 먹기로하고 회천면 일대의 식당을 둘러 보다가 주차하기가 좋고 널찍한 집에 들어가니 손님은 없고 주인들만이 한가롭다. 기대를 걸고 요즘이 제철이고 별미라는 전어구이를 시켰다.
듣던대로 맛이 엄청나다. 오기도 잘했지만 선택이 탁월했다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민물고기와 바닷고기의 중간쯤 되는듯한 묘한 맛이다. 처음온 곳이고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서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고 참 기억에 남을 새로운 맛이었다.
어둡기도 하고 방향감마져 없어서 숙박할 곳을 물었더니, 바닷가를 따라 장흥쪽으로 얼마 않가서 모텔이 있단다. 방파제를 잠깐 산책한 뒤 출발했다. 얼마 안된다기에 가까운줄 알았더니 가도 가도 보이지를 않아서 길을 잘못들지나 않았나 싶었는데 길 옆에 네온싸인이 있어서 언덕을 올라 숙소를 잡았다. 창문을 열어도 사방이 어두워서 가까이는 보이는 것이 없고 저 멀리 반딧불같은 불빛만이 아련하다.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고 정말 칠흑같다는 말이 실감이 되었다.
한 밤중에 깨어보니 창문으로 별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별빛이 얼마나 초롱 초롱한지 잠이 확 달아나서 밤하늘을 한동안 쳐다 보았다. 같은 하늘아래 살면서도 이렇게 멋진 자연의 느낌을 잊어버리고 살았구나! 하면서---어느새 구름은 걷히고 별 밤의 선물속에 있을수 있음도 참 아름답고도 드문 축복이구나! 하고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6시쯤 눈을 뜨니 창밖이 훤하다. 침대에 누워서 바로 아래 바다가 펼쳐져 있음에 감탄이 절로 났고, 창가에 서보니 참으로 절경이다. 펼쳐진 바다와 그리 멀지않은 저만치에 적당하고도 아름다운 섬이 새날의 아침을 신비와 축복으로 휘감아 준다. 섬 이름은 간판의 이름으로 보아 옥섬으로 부르지 않을까?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놀라운 은총이 절로 명상에 들게한다. 참으로 감사 합니다 !!!
이래서 호남이 동양화가 저절로 뿌리를 깊게 내렸지 않았을까? 또한, 어제 오늘의 모습 뿐만이 아니라, 수 없이 긴 세월을 거쳐서 변하는 일기에 맞추어 드러내는 자연의 신비함이 수 많은 분들에게 수묵화의 경지를 스스로 깊게 터득토록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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