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생활의 대부분은 바깥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주의를 끌기위해 온갖 수단이 동원되고 있는것 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가능성을 경향성으로 길들여 지도록 하지만 의외로 그 만큼의 헛점도 함께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이 자연스레 나타나는 헛점이 바로 삶에서 공간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이런 것이 헛점이지만, 자연을 살펴보면 수많은 공간이 있고 이것은 우리들에게 편안함을 더해준다. 산과 산사이, 강과 강사이, 나무와 나무사이-.또 한그루의 나무만 보더라도 가지와 가지사이,잎과 잎사이는 공간이다. 만일 이들을 갈라놓는 공간이 없다면 삶속의 모든 다양함은 사라지고 말것이다.
사람에게도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 하나 하나의 생각이나 신념들이 구별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산을 보고 생겨난 이미지와 나무를 보고 생긴 내면의 이미지가 아무런 차이가 없다면, 산과 나무는 구별되지 않을 것이며 이것을 기초로 이루어지는 다른 사고작용도 없을 것이다.
우리들 각자의 다양한 풍성함과 의식의 흐름 모두는 생각과 생각, 느낌과 느낌을 구별시켜 주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생각과 신념의 구분은 그것들 나름의 존재가치를 갖고 있음을 알기 위함이며 또한 생각과 신념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인식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인식을 포함한 모든 것들은 공간이 있기에 가능하다. 이 우주에서 구별되는 것으로 지속되는 것중에 영원한 것은 없다. 이 말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변한다는 사실 자체뿐일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구별되고 변화 하지만,그 사이 사이의 공간 자체는 구별이 없다. 수 많은 구별을 낳는 공간 자신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며, 무엇 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다. 하늘의 빈공간이나 가지들 사이의 공간과는 차이가 없다. 생각과 느낌 사이의 공간에도 어떤 차이를 발견할 수 없으며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차이 없음은 오히려 충만한 삶,차이로 가득한 삶을 가능하게 한다. 변화와 생명작용에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공간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의 내면이나 외면을 구분하는 것도 신념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즐거움과 기쁨, 슬픔과 비통함이 일렁이고, 때로는 폭력과 광기, 환희와 엑스터시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것들 사이 사이의 공간에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그저 평안이라고 할 수있는 평화만이 있다. 그 모든 것의 변화를 감싸안고 지켜보는 공간을 사랑이라고, 자유라고도 한다.
뭐라고 부르던 그것은 명칭이 아니라 모든 가장자리를 포함하는 것들을 싸 안아서 품고 있음이다. 이것은 육체와 마음, 생각과 신념은 물론이고 한계지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품고있다. 이것이 삶을 이루는 원리이다.
이렇게 삶이 작동되는 방식(원리)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걸림 돌은 관습이나 체제에 타협하는 것이다. 관습이나 체제란, 대부분이 살펴보지도 않고 믿고있는 개인이나 집단의 주입된 신념들이다. 이것은 이해에 도달할 때까지 수많은 불필요한 고통과 외적인 장애물을 자청하게 된다. 그래서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들을 알아차려야 웃음의 순간들, 슬픔의 순간들, 용서하는 순간들, 화나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해결하면서 남들을 이해해 주는 입장인 사랑(자비)을 발견하게될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자신이 사랑임을 알게될 것이다.
사랑만이 필수 불가결한 결합을 맺어 주면서도 하나됨의 조건들을 이룰 수 있다.모든 것을 감싸안는 한계없음의 공간이 우리의 본래 성품이다. 이 성품으로 물질계에서는 신념대로 경험을 하게되며, 실존(본성)을 자각할 때는 있음(being)과 행함(acting)과 가짐(having)의 관계가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있음은 사랑이고, 사랑으로 부터 능력이 나오며, 이 능력에서 우리가 삶에서 이루는 성과가 나오는 것이다. 이런 의식의 작용이 자신의 불멸성을 회복하고 무한성을 인식하는 것이며 자신의 참된 근원(본성)인 사랑과 하나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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