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6일~7일
아침에 잠을 깨니 거의 7시가 되었다. 오랫만에 부산시내 구경을 할까 하다가 아내와 상의를 한 결과 처음으로 거제도를 가보기로 합의가 되었다. 바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버스를 이용하려고 나서는데 한 후배가 자신의 승용차로 함께 가자고 연락을 해왔다.
차편이 마땅치 않던 판에 참으로 잘 되었다며 지하철을 이용해 사상역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이용한 부산 지하철은 달릴 때 마찰음이 너무 심해서 개선되어야 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지하철도 다 같지야 않겠지만...
승용차로 2시간 반정도를 달려서 신거제대교를 거쳐 거제도에 들어가서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식당 간판들만 눈에 크게 들어왔다.
벌써 배가 고파 지다니...시각은 오후 2시가 되고 있었다. 몇 군데를 들러서 넓은 호숫가에 위치한 아담한 한식집 앞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구찜 맛이 특별 하다기에 주문 했더니, 시골 인심이라 푸짐하기도 했지만 시장이 반찬인지 정말 형언키 어려울 만큼 입에 짝붙는 맛이었다. 셋이서 모두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며 땀을 흘려가며 정신없이 먹었다. 또한 각자가 주인 아주머니의 솜씨가 대단하다는 칭찬을 했더니 구수한 숭융까지 만들어 주셔서 감사와 포만감이 절로 들게 되었다.
섬의 여기저기 둘러 보면서 섬이라면 작게만 생각했던 것과는 판이하게 너무나도 높은 산과 우거진 숲은 참으로 놀라울 정도였다.또한 모래 라고는 없고 주로 까만 자갈로만 펼쳐진 몽돌 해수욕장은 참 특별한 인상을 주길래 내려서 잠시 쉬기도 하였다.
쉬는 사이에 기회를 놓칠세라 후배의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돈도 벌고 싶고, 놀고도 싶고, 삶의 깊은 의미도 알고 싶은데 마흔 다섯이 넘은 지금도 불확실 하기만 하단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기 저기를 아무리 찾아 보아도 안심이 되지를 않는다고 하소연을 했다.
정말로 절실한 것이 무엇 인지를 물어 봤지만, 아직은 별로 절실한 것은 없고 그냥 남보다 잘하고 싶단다. 그래서 바닷물에 손을 담그고 손을 깨끗이 씻어 보라고 했더니 손만 씻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생각만 덧붙여 버린다. 단순히 손을 씻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손을 씻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번에 한가지씩을 할수 있는 여러가지를 실제로 함께 해보고는 돌아올 때까지 가만히 혼자만의 시간을 주었다. 저녁 9시가 되어서야 부산 서대신동의 어떤 일식집에서 마주 앉았더니 복잡하게 끓어대던 생각들이 모두 사라지고 편안해 졌단다. 스스로 생각의 두께가 얇아지고 그것을 알아 차리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단다.
저녘 식사는 다른 두사람이 더 왔고, 삶을 통하여 우리들이 어떤 경험을 하는가? 로 진지한 얘기들을 자정이 가깝게까지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호텔로 돌아와 창문아래로 펼쳐지는 해운대 백사장의 달빛아래 부서지는 잔잔한 파도들과 말없는 교감을 한후 침대로 끌어 들이려다가 어느새 곯아 떨어졌다.
사람이 처음의 바램은 욕망에서 시작도 하지만, 차츰 삶의 두께가 더해 지노라면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와 더불어 내면을 향하는 횟수가 많아지게 되고, 내면에서 불이 지펴져야 바깥의 대상이 아닌 순수함 속에서 행복이라는 보물을 찾지 않을까? 참으로 '진정한 자기'는 늘 지금,여기에 함께 하건만!
오늘은 7일,돌아갈 날이다. 준비를 하고 프론트에 내려 갔더니 잘 산다는 후배 한분이 계산을 끝내고 기다리고 있다가 부산역까지 자신의 승용차로 태워다 주었다.부산역에서는 얼마 전에 개통한 고속철(KTX)이 어떨까 기대를 하며 처음으로 동대구역까지 탓다.특실은 공간도 넉넉하고 좌석도 안락하며 간단한 음료를 서비스 하는 것이 기분을 더 했으나, 대구 까지의 속력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대구의 집에 들러 짐을 풀어 놓고는 서예를 하시는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퇴근후에 저녘식사를 함께 하자며 만났더니, 교장 선생님 답지않게 여전히 도 닦는 얘기에 관심을 보이신다. 78년에 함께 도닦는 모임에서 만난 유일한 도반이었지만 지금은 자주 만나지 못해서 무척 궁금했던 모양이었다.그 때는 여리고 연약하게만 보이시던 선배 모습이 이제는 여장부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