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같지가 않습니다.
느끼는 것은 가슴을 통하여 온 몸으로 하지만,
생각하기는 머리로만 합니다.
생각하는 것은 지적인 이해를 통하여 경험을 대치하기에 복잡하지만,
느끼게 되면 경험으로 끝나게 되어 단순해 집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머리는 좋다지만 생각에 휩싸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가슴이 열린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느끼며 사는 사람들은 어떤 것에도 걸리지 않고 스스럼 없이 살아가는 가슴이 열리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삶을 신나고 재미있게 즐기며,
할 일은 스스로 찿아서 하는 여유있고 평화로운 사람들 입니다.
그래서 느끼며 사는 것이 절실히 필요 합니다.
그렇지만, 느끼는 삶은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다룰 수 있을 때에만 가능 합니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느낀다는 '생각을한다'는 것입니다.
느끼며 사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느낌을 말이나 글로 바꾸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느낌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이끌어 갑니다.
그렇지만 느끼는 것을 피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과 별로 다름없는 생각들을 쓸데도 없이 강요한다고 상상하고는 뭔가 저항을 합니다. 그 저항하는 자체가 바로 괴로움 즉, 생각을 거듭하여 그 생각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괴로움이 어딘가에서 나타나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저항을 할수록 바로 그것이 굳어져서 괴로움이라는 휩쓸리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입니다.
생각하는 것은 설명을 필요로 하게 되고 거듭할 수록 주의가 집중되어 오므라 들어 굳어지게 되지만, 느끼는 것은 지금의 순간에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그 순간은 조금의 생각도 없이 선명하게 존재 합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즉, 임재감 입니다.
어떻게 하면 흔들리지 않는 고요와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삶이 될까요?
이것은 각자가 스스로 경험을 통하여 '터득하는' 길고도 어려운 힘든 길이 있습니다.
더 쉬운 방법은 경험있는 분에게 직접 안내를 받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고요나 평화를 잘 설명하고 지적인 이해가 된다 하여도 그것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그런 설명은 상징에 불과한 것이어서 고요나 평화 그 자체는 아닙니다.
평화나 임재감은 자신의 생각들이 사라지고 고요해 지면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언제나 배후에서 기다리고 있는 '본래의 우리 자신'입니다.
단 한번 만이라도 제대로 이 경험을 한다면 일상에서 언제나 함께할 수가 있습니다.배후에서 늘 함께하는 진실을 '경험으로 터득하게 되면'자연스레 제약이나 한계가 없는 삶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필요에 따라 무엇이든 '창조하는 삶'을 누리게 됩니다.
푸른 하늘은 언제나 그렇게 있어 왔지만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과 같습니다.
그 푸른 하늘이 본래의 우리 모두의'본성'입니다.
어떻게든 진실로 자기의 모습을 찾으려는 '용감한 영혼'은
언제든 스스로 창조하는 찬란한 결실을 원하는 대로 거두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생각의 항아리를 채우려고 온 힘을 기울이지만,
그 반대로 '그 항아리'를 깨뜨려 버릴 때 진정으로 자유와 평화가 잦아들게 될 것입니다. 그곳이 본래의 영원한 자기 고향임을 알게 됩니다.
배후에 서늘 우리 모두와 함께해 왔던 순수한 빛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