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살면서 우리는 늘 누군가와 인사를 나누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우리는 전통적으로
"안녕하십니까?"나 "식사 하셨습니까?"등의 갖가지 인사말을서로 나눈다.
이렇게 나누는 인사말에 우리는 실제로 얼마나,어느 정도의 진심이 담겨 있을까?
인사는 가까운 가족을 비롯하여 문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살지만, 때와 장소,형편에 따라서 다르게 마련이다.
이런 인사말에 대해서 자신이 어떤 상태와 모습으로 인사를 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때 까지는 한번도 제대로 살펴 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점검해 볼 생각조차 못한 채 지금까지 살아 왔다.
그렇게 자신이 어떻게 쓰는지를 스스로 살펴보지도 않고 바쁘게만 살던 때에,
나에게는 뜻밖의 장소에서 자신의 인사하는 모습과 마음가짐, 그리고 습관에
깊이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기회가 있었다.
십여년 전 1월 어떤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의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갔을 때였다. 그 모임은 매년초가 되면 세계 60여개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였다. 그 지역은 미국 사람들 조차도 가보고 싶거나 살기를 원하는
세계적인 휴양지였다. 당시 겨울철인 우리나라는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었지만, 그곳은 아침 저녁으로 만약간 쌀쌀할 뿐
낮에는 햇살이 따뜻해서 우리나라의 봄날과 같았다.
꽤나 여행을 다니면서 그 모임에는 전에도 몇번 가본적이 있었기에
나는 편안하고 조금은 느긋하게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수가 있었다.
3일째 되는 날 아침, 시작 시간이 좀 남아서 여유가 있었기에
산책을 겸해 음료를 마시려고 국제회의장 바깥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둥그런 야외 테이블에 둘러 앉아서 얘기들을 나누며
즐기고 있었고 나는 그 한곳을 지나가던 참이었다.
바로 그때 함께 웃고 얘기하던 사람들 중에서 그 전 여러 모임에서 만나 가까워진
미국 텍사스 출신의 '홀리 프리티'라는 참가자와 시선이 마주치게 되었다.
일년 만에 다시 만나서 반가운 마음으로 가볍게 눈 인사를 했다.
그러자 홀리는 얘기를 나누던 동료들에게 잠깐 양해를 구하더니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를 해왔다. 지난 번 모임에서 도움을
받은 일도 있었지만, 몸에 밴 정성스러운 친절과 품위에 특별히 인상이 깊었던
그이 였기에 "지난번 모임에서 친절하게 도움을 주어서 고마웠고, 귀국 후에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깊이 고마움이 전해와서 삶에 많은 도움이 되어 감사하다"
고 인사를 건냈다. 사실이기는 했지만 거의 습관적으로 예를 차린 인사말이었다.
그런데 홀리가 가까이 다가서면서 "Mr.박,당신이 고마워하는 그 마음을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면서 정성스레 허깅을 해왔던 것이었다.
참으로 진심 어린 인사말이 아닌가!
이 때까지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놀라운 인사말 이었다.
정말로 따뜻하게 감사함과 고마움이 전해왔다.
일상의 작은 일을 함께하거나 인사를 하면서 이보다 큰 축복이 필요할까!
그때서야 난 속으로 "어! 이게 아니었는데~"하는 생각이 스쳤다.
순간적으로 내 삶의 모습과 일상의 인사하던 습관적인 나의 자세가
어떻게 잘못되어 있었는지를 알아 차렸다.
내심으로 심히 충격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솔직히 고백한다.
진심이 아니면서도 "감사합니다"라는 습관적이고 말 뿐인 인사가 얼마나
많았던가! 인사를 할 때도 그랬지만,다른 사람이 "감사합니다"나"고맙습니다"라고
할 때에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까짓 걸 가지고, 뭘~"또는,
"뭘 그런 일로~", 아니면, 그저"예"라고 대응하는 정도의 대답을 해왔던 것들은
거의가 '진심이 깃들지 못했었음'을 그때서야 처음으로 알아차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 뒤 일상으로 돌아와서 점차로 다른 사람들이 고마워할 때는
정성을 기울여서 상대방의 고마움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렇게 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함께 기뻐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지금도 "당신의 고마워하는 마음을 감사히 받겠습니다."라고 하면 약간은
묘한 표정을 짓는 것을 느낄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좋아지고
괜챦은 일이 더해진다. 진심어린 인사를 자주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또 몇년 전 4월에는 이태리의 베르가모라는 고색 창연한
도시에서 열린 모임에 참가하여서 프랑스에서 온 '앙리'를 만났을 때이다.
사십대 중반의 남자로 동작이 둔하고 언어에도 약간의 장애가 있어서 아주
천천히 발음하던 그 이는 그 모임이 처음이었다.
장애 때문에 조금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마침 다른 사람과
함께해야 할 연습이었기에 그는 사람을 찾았지만 지원자를 찾을 수가 없어서
과정을 시작하려 했지만 같이할 연습 상대가 없었던 것이었다.
도우미를 구한다는 방송이 들렸다.
당시 수백 명의 참가자 중에서 우리 팀은 10여명의 한국 사람들이 모여서
부지런하기로 소문날 만큼 열심히하며 선두 그룹을 유지하고 있어서
다소간 느긋하기는 했었지만, 나는 앙리의 도우미는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온 많은
참가자들이 알아서 하겠거니 하는 생각을 했었다.
방송이 몇차례 되풀이 되는 걸 들으면서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약간의 궁금증과 함께 어떤 책임감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팀의 상황을 다시 살펴 보았더니 충분히 여유가 있었기에
자원을 했다. 막상 연습을 하려고 마주해 보니, 앙리는 귀에 겨우 들릴 정도의
아주 작은 목소리 밖에 내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연습을 해나가면서
차츰 나아지는 걸 느꼈고, 점점 더욱 정성을 기울이게도 되었다.
그렇게 4시간 가까운 시간을 함께한 뒤에야 그 연습을 제대로 마칠 수가 있었다.
보통은 20분 정도면 끝나는 연습이었지만 앙리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연습을 끝내면서 목소리가 다시 돌아온 그의 눈가에는
이슬처럼 눈물이 맺혀 있었고 우리는 깊은 일체감을 느끼게 되었다.
악수를 나누는 순간,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 연습을 통하여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사물의 외면만이 아니라, 내면의 진실인 본성을 느끼는 것'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한 것이다. 그 연습을 그렇게 오래 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그 후로도 없었다. 당시의 베르가모에는 큰 호텔이 없어서 참가자들이 여러
호텔에 나뉘어서 숙박을 했다.아침 저녁마다 모임 장소로 오가는 번거로움이
있긴 했었지만, 그 길에서 대하는 자연과 환경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도
잘 보존되어 있어서 이방인들을 매료 시키기에는 충분했었다.
또 저녁 시간에는 천년이 넘었다는 잘 보존된 붉은 벽돌집에서 전통의
이태리 피자를 즐기기 위해 한시간 정도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고로움 조차도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었다.
들판에 가끔씩 이태리 포푸라는 보았지만 '이래리 타올'은 찾아보아도 찾지를
못했었다.연수 마지막 날은 전 과정을 마무리 하느라 조금 늦게 호텔로비로
내려갔었다.전혀 예상치를 못했었는데 앙리가 자기의 동료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동료들 말로는 두어시간은 족히 기다렸단다.
약속을 하지는 않았지만 늦게 내려와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그렇지가 않다며,
"동양의 신사인 당신 덕분에 이 모임에서 연수를 잘 마쳤으며,
인간의 진실함이 어떤 것인지를 처음으로 깊이 느끼게 되었기에,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어서" 기다렸다면서 눈물을 글썽 거렸다.
우리 모두가 진실로 인간애를 서로 느끼고 나누는 멋진 순간이었다.
그의 인사에 "당신의 진실로 고마워하는 그 마음을 감사히 받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는 끅끅거리며 눈물울 흘렸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호텔로비 가득히 박수를 보내며 함께해 주었다.
그 순간 우리는 에고(ego)없는 일체감과 깊은 존중심으로,
삶이라는 여정에서 장애물 경기 같은 항로를 힘들여 함께 통과한 듯,
젖은 눈망울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표현 할 적당한 말도 없었지만 애써 할 말을 찾지도 않았다.
길동무가 되어준 서로에게 깊은 동료애를 경험하면서 감사와 신뢰를 간직하게
되었다. 사물을 대함에 있어서도 그렇게 가면을 벗어던지고
'나의 생각'이라는 대전된 주의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생각과 경험하는 것이 온전히 일치되는 것'이 아닐까?
'본성대로 흐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겉 모습이 다가 아니기에 (2) | 2006.05.04 |
---|---|
삶의 여정에도 길이 있다 (4) | 2006.04.26 |
궁극의 소원 (1) | 2006.04.09 |
자신의 생각을 다루게 되었다. (2) | 2006.04.04 |
시원한 여행(거듭 남과 부활) (0) | 2006.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