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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풀어보기

겨를

우리 말에 '겨를'이라는 낱말이 있다. 일상에서 가끔씩 쓰고 있는 낱말이지만 오늘 오후에 산책을 하면서 찔래꽃을 보고 그 향기를 느끼려는 순간 문득, 내가 이 낱말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구나 하게 되었다. 그래서 산책에서 돌아와서 이 낱말의 뜻을 여기 저기에서 찾아 보았다. 이 가운데 삼성출판사 발행 '새 우리말 큰 사전'에는 '바쁜 가운데서 얻을 수 있는 여유있는 동안',  '틈', 또 인터넷 검색에서는 '어떤 일을 하다가 생각 따위를 다른데로 돌릴 수있는 시간적인 여유'로 확인하였다. 일상에서 쓰고 있었던 그대로의 의미였다. 그런데 산책을 하던 도중에 찔래꽃이 핀 곳을 지나면서 그윽한 향기를 접하던 순간 '찔래~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고~~향' 이라는 옛 노랫말이 떠 올랐던 것이다.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찔래꽃에 후각적인 향기가 더해 인식이 되고 느껴지면서 확인하려고 다가 서는 순간 노랫말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이 순간'이 바로 '겨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상에 가 있던 주의가 자연스레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면서 거기에 더해지는 것이 생각(반응,기억, 사고, 상상,지어내기등)이지만 대상을 인식에서 부터 생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의 사이(비어 있는 틈)를 '겨를'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겨를'을 놓치는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순간은 생각에 잠겨 있어서 맑은 의식으로 깨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삶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겨를'을 이어가는 것이며, 삶이란 바로 '겨를'을 온전히 살리는 여정인 것을... 생각을 알아차리고 다루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참, 요즘 제주도의 산야는 찔래꽃이 한창이다. 거의 대부분이 하얀 꽃이지만 가끔은 연분홍 꽃을 발견할 때도 있다. 이 계절은 귤꽃의 짙은 향이 더해서 찔래꽃의 그윽~한 향기를 방안에서 까지 느낄 수가 있지만 향기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내가 산책하는 길 4Km 정도에는 한 무더기의 붉게 피는 찔래꽃이 더 짙은 향기를 뿜어주고 있어서 "찔래꽃~ 붉게  피~이는 남쪽 나~라~"... 노래를 흥얼거릴 수가 있어서 참으로 즐겁고 신나며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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