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대로 흐르기

어떤 관점에서

비어있음 2022. 11. 11. 10:50

사람을 근원적인 면에서 살펴보게 되면 실상을 말로 설명하기는 참으로 쉽지가 않습니다.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대화를 하면서 살펴보아도 형체는 이렇게 드러나 있지만, 

이 사람의 본성은 어떤 이도 보이지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실재는 드러나는 모습만이 사람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든 우리는 상대를 마주 대하면서 '있는 그대로' 느끼게는 됩니다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순간에도 

자기가 살아온 방식인 습관대로 어떤 판단이나 분별을 덧씌우게 되어서 

판단이나 분별한 생각(분별심) 그대로 상대방을 지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직전에 했던 분별심(생각)을 통해서 상대방을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의 순수한 모습을 가리게 되는 생각(분별)을 자기가 지어내고 있음을 

스스로가 알지를 못하고 있다면, 이것은 혼란을 지어내는 관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 각 자가

무엇에든 공감을 하거나 또는 못하면서도, 

자기에게서 떠오르고 느껴지게 되는 생각들을

이 생에서 삶으로 펼쳐지도록 유용하게 사용하고(쓰고) 있으면서도,

이 능력을 자기가 사용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겪고 있다는 것을

거의가 제대로 밝혀보지를 않으면서 살고 있다는 맹점이 있습니다.

누구든 자기가 하는 생각으로 인해서 함께하고 있다거나 떨어져 있게 된다는 

말씀을 들어보신 분은 그리 많지가 않을 뿐더러,

어쩌면 아주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알고 지어내는 생각이든, 

다른 누군가로 부터 모르고 받아들인 생각이든 구별이(관계가) 없이 

다 같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아는 것은

삶의 전반에 걸쳐서 큰 영향을 끼치는 아주 중요한 부문입니다.

 

세상은 늘 자연스럽게 변화해 가고 있기에,

있는 그대로 보게되면

아무런 일없이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건, 판단이나 분별(생각)을 하는 쪽은 사람들 자신이어서, 

우리의 본성은 언제 어디서나 늘 순수하게 지켜보고 있지만,

개체성(자아상)이 일으키는 각가지의 판단이나 분별되는 생각들로 

순수함이 가리워지게 되어

밝지 않는 정도 만큼을

바로 자기의 삶에서 스스로가 겪으면서 

온갖 희로애락으로 드러나는 것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