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작은 풀의 알찬열매

비어있음 2003. 11. 4. 23:10

오늘은 바람결이 무척 상큼하다. 아침에는 차갑게만 느껴지던 바람끝이 한낯이 되면서 포근해 졌으며, 오랫만에 그 전형적인 높고 파아란 가을 하늘을 봤다.

따사로운 햇살을 이고 마당가에 서보니 제철을 맞은 노랗고 빨간 국화는 그윽한 향기를 뿜어서 마당 가득히 가을을 전해 준다. 국화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가득 깊은 숨을 쉬면서 국화 가까이 다가섰고 뱃속까지 편안함을 느꼈다.

기분좋을 정도로 불어오는 바람결은 저 멀리 제주서중 학교의 마이크 소리를 아련하게 실어오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 옆으로는 밭경계로 쌓아올린 화산석들이 척박한 땅에서도 묵묵히 견뎌온 제주 사람들의 인내심과 혼을 솜씨 좋게 전해준다.

화산석으로 쌓아 올린 경계석 사이 사이에 자라난 이름 모를 작은 풀은 보일까 말까할 정도의 미미한 정도의 꽃에도 격에 맞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알찬 열매를 달고 있다. 한두 달에 한번씩 오년여를 제주도에 드나들었지만 이런 신비한 모습을 어떻게 한번도 제대로 못보고 지나쳤단 말인가?

늘 크고 번듯한 것, 보기 좋은 것 등, 눈에 띄는 것들 만을 위주로 살아온 내 삶의 면면들이 저절로 뒤돌아 봐지게 된다. 이제 더듬어 보면 아직도 내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 가치를 기준으로 연명하는 연약한 영혼으로, 너무많은 순간들을 넓게 살피지 못하고 내 생각에로 좁혀져 있을 줄이야!

이것이 나에게는 은총이고 축복이로구나!

이제 부터라도

`덜 거짓되고,

보다 공정하게 행동하고,

보다 진실된 말을 하며,

더욱 신뢰 받을수 있고

또한 보다 많이 용서할 수 있는

내가 되도록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난 진정으로 온전함의 반영인 세상에서 살고자 하니까...

동시성!

세상에 역할이 아니고, 진정으로 작은 풀 작은 열매가 있을까?

이렇게 편안해 본 적이 언제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