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2
(지금부터한 동안의 글들은 의식의 깊은 면을 살펴보고 드러내는 것이기에,
실제로 경험되지 않으면 '생각의 틀'에는 맞지 않을 것임을 밝혀둔다.
아마도 '자신의 껍질'을 벗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참고가 될 것이다.)
앞에서 말한 '나',
즉 자아란 대개 고정된 판단(판단의 틀)을 하는 하나의 자아상을 지어내는 것이다.
이런 패턴은 자기가 판단하는 것에
스스로가 걸려있는 굳어지고 있는 성질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런 성질의 패턴을 좀 더깊이 살펴보면,
긍정적으로 판단되는 한 면과 부정적으로 판단되는 또 다른면을
스스로 '알 수 없다(미지)'라며 지어내면서 갈라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는 자기가 원하여 한쪽 면을 거듭하여 다스려 보아도,
경험하기를 원하지 않는 쪽으로 부터 에너지를 받고있기 때문에
자동처럼다시 지어내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것이다.
이것은 본래한 패턴인 것을 '알 수 없다(미지)'를 가운데로 하여
두 가지의 패턴으로 분리를 시켜서 한쪽 면을 다루려는 것으로,
바로 이원성(二元性)을 지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지어내고 있는 것을
우리 사회에서는 카르마 또는 업(業)이라고 일컷고 있는 현상으로써
위의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삶의 많은 부분에서 거듭되는 일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것에서 벗어나는 길은
어떤 한 쪽만이 아니라,양쪽 극의 가장자리를 확실히 인식하고(한정짓고)
그 느낌을 충분히 지각되는 그대로 경험하여 다루어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이 전까지 살아 온방식에서 처럼
삶에서의 상황들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마다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들을 온전하게 정성껏 살펴가며 스스로 인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때까지 삶에서 계속하여 피하거나 도망치거나 외면하면서 저항해 오던 모든 것(느낌)들이
대부분은 걸려있는 자아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실감하게되는 것이다.
왜 이런 것들을 다루어야 가야 하는가? 하면,
'나'라고 믿고 있는 것은 판단의 틀(생각의 굴레)로써 자아상이 되어
자기가 자신을 속여서(자기가 자신이 하는 생각에 속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여)
사회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원하게 되면서도 그렇지가 못하게 되고
다소 불리하다는 존재의 양상에서는 다시 저항하는 것을 지어내는 경험을 반복하게 되는,
즉 스스로괴롭고 힘들다고 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청산하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