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교직에서 무었을 했던가?

비어있음 2006. 11. 11. 20:22

며칠 전

처음 발령을 받아서 학교에 갔을 때 담임을 했던 반의 제자가 오랫만에 전화를 했다.

작년 이맘 때쯤 내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제주도를 다녀간 약사였다.

얼마 전에 40년전 그 때의 동급생들이 모였었단다.

그 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들 중에서 삼학년 때의 담임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는데,

참석한 사람들 중에서 전화하는 자기 외에는

아무도 그 때의 담임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더라고 하면서

"어떻게 된 영문인지?" 궁금해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 보았더니

67년 9월 20일에 초임 발령을 받고가서 3학년 담임을 하다가

그해 12월 7일에 강습을 갔고 강습을 마치고 나서 바로 새학기가 되면서

다른 학교로 옮긴 기억이 나서 그대로 얘기를 해줬다.

약 두달 반 정도를 그반 학생들과 지났던 것이었다.

"그러니 아마도 기억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가 아닌가?" 하면서

그 때의 기억나는 사람이 누구 누구라고 겨우 세사람의 이름을 얘기했더니

한사람의 남학생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마져 여학생의 이름으로

세 사람이 모두 그 때 같은 반이었다고 바로 잡아 주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던 중에

진동으로 해둔 휴대폰이 계속하여 울렸지만 받을 수가 없어서

나중에 확인하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배터리를 빼버렸다.

수업을 마치고나서 수신된 전화번호를 살펴보니

처음 보는 번호인데도 같은 번호가 여러차례 찍혀있었다.

"누굴까?" 궁금하기도 하고 잠깐 짬이 있어서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울리자 마자 "박찬ㅇ 선생님이십니까?" 하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선생님, 저 김ㅇ남 인데요. 기억하시겠습니까?" 했지만

기억은 잘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기억이 잘 나지가 않는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목이 메이는 음성으로

"제가 이번 동창들 모임에 못나가서 소식을 못들었었는데,

오늘 약을 상의하기 위해 친구와 전화를 하다가

선생님 소식과 연락처를 알게 되어서 연락을 드립니다" 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 내가 남학생으로 기억했던 바로 그 여학생이었다.

"사실은 그때 가정 형편이 너무도 어려워서 어린 나이에 힘들어 했었는데

선생님께서 따뜻이 챙겨주시고 돌봐주셔서 한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며

"그 이후로 선생님들을 존경하게 되었고,

선생님같은 남편을 만나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면서

반은 흐느끼며 반가와 해서 좀은 어리둥절하게 되었다.

얘기를 들으니 뭔가 자질구레한 것을 챙겨주기는 했었던 기억이 났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긍정도 부정도 할 수가 없어서 어정쩡해 하면서...

"작년10월 죽었을 때 안돌아 왔었더라면 못 볼뻔 했다"고 했더니

"정말 그랬었으면 한사람에게 한을 남기게 만들었을 거"라고 하길래

서울에 가면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는 통화를 끝내고 나니

'교직에서 무엇을 했던가?'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죽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에는 할 일이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