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대로 흐르기

삶의 느낌과 신성

비어있음 2007. 11. 28. 10:41

잘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창조자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어떤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고생을 지어내고는

그 원인이 세상에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과 고통에 겨운 나날을 보냄으로

스스로의 창조력을 극도로 약화시켜서

드디어는 겨우 가냘프게 용서와 자비를 비는 것 조차도 더듬거린다.

오랫동안 나 자신도 그렇다고 믿어(생각해)서 그렇게 살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치루는 댓가는 안타깝게도 은혜로 부터 멀어지는 것 뿐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들은 자기 자신의 창조력을 부인한다.

스스로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있지도 않은 제약과 속박의 굴레를 쓰고 시험과 갖가지 어려움에 둘러 쌓여

위태한 승부놀이를 하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유식한 학자들이나 많은 성직자들은 그런 일에 대해 뭔가 잘 알고 있는 척하지만

실은, 삶에 대해 그저 책에 적힌 말들을 알고 있을 뿐이어서,

갖가지 어려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절망적인 몸부림에

겨우 희망적인 인용구 정도를 들려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살아 남을 수 있을지, 무엇이 끝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지를

알아 내려고 온갖 힘을 다해서 몸부림치듯 살지만

여전히 괴로움에 시달리며 벗어나지를 못하고있다.

어쩌다가 은혜 속에 살기도 하지만, 거의가 잊혀짐 속에 묻혀 버린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다가 삶을 보낸다.

그러나 언제나 길은 있다.

자기의 주의를 잘 기우리기만 하면 삶 속에 함께 걸어가면서 '있음'을 '경험한 이들'의

가만히 포용하는 순수한 사랑의 행위를 보는 순간

사람들은 갑자기 '나에게도 창조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있음을 경험한 이들의 화음의 울림은 귀가 열리는 사람들의 깊은 속에

공명을 일구어내어 듣는 사람들의 꿈상자가 열리게 한다.

사람들은 그 때까지 자신의 현실이라 여겨온 꿈을 꿰뚫어 보고

스스로의 신성을 되새기기 시작한다.

창조력은 이렇게 되살아나고 전해간다.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