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대로 흐르기

의도적인 사고

비어있음 2008. 4. 25. 10:19

Over the rainbow (mp3로 녹음을 해서 잡음이 있습니다.)

의도적인 사고(思考)란, 우리들이 생각, 곧 상념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해서

물질적인 현실을 만드는 것입니다.

눈여겨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물질적인 현실을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물질적인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물질 우주안에서 뭔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의 마음에 하나의 사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창조해야 합니다.

그 어떤 종류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바로 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바로 잡지 못하여 스스로 지치거나

쓰러지고 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창조를 하려는 결심이나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쉽지가 않다고 하는 일이며

자칫 그릇 된 결정은 실패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자신의 생각을 바로 잡는다면

그릇 된 결정을 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거의 모든 그릇 된 결정은 만들어지기 보다는 교묘히 섞여 들어와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늦어서야 드러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하기란 그저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뭔가에 대한 자동으로 나타나는, 반응하는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반응을 하면서도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뭐라고요?

뭔가를 의도적으로 생각하기를 원한다면 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은 그저 의식의 바람속에 돌고 도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묘한 일입니다.

누군가에게 "생각하라."고 주문해 보십시오.

그러면 거의 모두가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는 뭘하고 있을까요?

아직 의도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럴 때 예리하게 "누가 당신의 생각들의 근원입니까?"하고 말한다면

"글쎄요. 저는 아빠를 많이 닮았습니다. 엄마는 저더러 아빠를 닮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십년 전에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하나의 생각 곧 상념을 창조할 수 있는지 봅시다.

강아지에 대한 하나의 생각을 창조해 보세요"

어디서 오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마음속에 강아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마도 어떤 때에 본 강아지의 기억에서 온 것일 겁니다.

그는 강아지에 대한 생각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강아지에 대한 생각을 찾아서 떠올린 것입니다.

그것도 괜챦습니다. 회상할 수도 있으니까요.

다행히도 그는 기억을 가려낼 수 있는 만큼은 깨어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부추겨볼 수가 있겠지요. "강아지를 기억해 냈군요. 좋습니다.

당신은 언젠가 강아지에 대한 생각을 창조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 강아지에 대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봅시다.

그 강아지에게 양말을 신기고 선그라스와 모자를 씌워보세요."

그가 제대로 했다면, 갑자기 밝아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자신이 그것을 해 낼 수 있다는 것에 무척 놀랄 것입니다.

이때까지 그는 우주의 흐름과 자신의 각가지 시각및 반응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그런 사람을 수렁에서 건져내어 의도적인 생각을 창조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에 책임을 지는 것이 그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를 근원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의도적인 사고에 대한 개념의 단적인 예입니다.

하나의 생각을 창조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이것은 높은 창조성을 요구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거의 초죽음시키는 인과적 삶의 흐름에서 벗어나

자기가 근원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는 바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지나가 버린 어떤 것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스스로 독창적으로 하나의 생각을 지어낼 수가 있습니다.

그 순간, 누구나 자기 우주의 최고 존재가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사는 사람은 모두가 그 최고의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