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라는 걸, 조금은 이해를 하여야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 때가 있었습니다.
제 입장에서 마음을 정리한다면, 일반적으로 그냥 마음이라고 표현하며 쓰이는 경우는,
거의 모두가 개인(개체)적인 사람이 있다(I am)는 인식으로 경험하는 "나"라는 생각인
사고방식의 틀로서, 우리의 일반적인 정서로는 자아상(고집)이며, 영어의 Mind 정도입니다.
그 다음으로 아는(알아차리는)마음은 개체의식(Consciousness)을 일컷지만,
앞에서 설명한 마음도 함께 포함시켜서 쓰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두 경우, 어느 경우든 자꾸 드러나기에 누구든 알 수가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정도의 의식수준에서 흔하게 겪게 되는 것은
마음이라 하면서, 안다고 말은 하면서도, 스스로가 '경향성(버릇)'이라며
자기에게서 나오고 있는 짓의 책임을 자신이 회피한다는 것입니다.
'함정'처럼 느껴지게 되면서도, 피하려 하는 '의식의 사각지대'가 되어서(느껴지게 되는)
"스스로는 드러나지 않고 거울처럼 비춰주면서"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오묘한 창조입니다.
이 마음은 모두가 쓰고 있으면서도, 있는지 없는지를, 알려지지가 않는 것처럼 여기는
바탕이 되는 순수의식(Awareness)이며, 앎(알아차림, 自覺)의 맑고 순수한 상태입니다.
순수의식은 사람이 주의를 기울여서 오감의 작용을 어느 정도는 알아차리는 것이 되어서야
앎의 상태의 "앎"을 경험하지만, 의도적으로는 되지가 않는 "저절로 되는" 자연상태입니다.
마음은 전체적으로 <경향성의 작용>으로서, 경험이 되지 못하여서
미뤄진 생각들이 '경험이 되려고' 거듭 떠오르고 나오는 미세한 생각의 꼬투리이며,
꿈(幻想)과 같아서, 현상의 구름이나 안개처럼 실상이 없습니다.
*순수한 있음은 "늘 있기"는 하지만, 어떠한 상태라고 도저히 묘사할 수가 없어서,
편의상 "空"이라 일컷지만, 이 또한 이름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것은 지적인 이해가 아니기에 뭐라고 부르든, 늘 있는 우리 모두의 바탕(本性)입니다.
참고로, 무심의 세계는 "없다는 의미의 無"가 아니라, 한계를 알 수가 없는 무한으로서,
불가(佛家)에서 무심이라는 의미의 마음은, '나'라는 아상(我想)을 넘어선 하나 뿐인
"큰 나"로서, 무량광대(無量廣大)한 있음 즉, 순수의식 (Awareness)인 것입니다.
써놓고 봐도, 한계가 없는 것을, 한계를 말하는 지성에 맞출 수는 없으니... 일 뿐입니다.
(하늘을 물에 비쳐지는 것으로 설명을 하려고 애쓰는 듯 합니다.ㅎㅎㅎ)
하나 더, "나"와 "너"나 타자(他者)라는 말은 주의를 기울여서 살펴보게 되면
관념이라는 정체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당신(當身)이라는 말도 주의를 기울여서 잘 살펴보기만 한다면,
아주 뜻밖으로 當身은 當神으로,
존재를 자각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가 있게도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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