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낙동강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이 되는 지?를 알고 싶어서 가뭄이 아주 심했던 해에는
어른들 모르게 혼자서 강줄기를 따라서 여러번을 상류로 따라가 보기를 여러차례 시도했으나,
결과를 보지못하고 물리 많아지고 때가 맞지 않다고 그만 둔 적이 있습니다.
그 뒤 40여년이 지나서 우연히 강원도에 여행을 갔다가 낙동강의 시발점이라는 곳에서
갑자기 통곡을 하게 되어서 동행들을 크게 놀라게 했었는데,
그 낙동강의 시발점의 조그만 연못의 이름이 "황금연못"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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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를 심어서 관리를 하다가 보면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로
든든하게 느껴질 때 쯤이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서 나무와 편안하게 교감이 되어 갑니다.
계절에 따라 과일은 고은 색깔로 영글어 지면서 풍성함을 풍기게도 되지요.
그러면 자연스레 열매는 수확이 되거나 나무의 아래로 떨어지게 됩니다.
나무의 열매인 과일은 껍질채 먹는 것이 맛과 향이 좋은 것도 많지만,
어떤 종류의 과일은 껍질을 벗겨야만 먹기가 용이할 수도 있습니다.
직접가꾼 나무는 어떤 과일이든 즐겨먹게 되면서 주인과 동일체가 되는데,
껍질체 먹는 것은 더욱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고 감격하게도 합니다.
세상에 모든 일이 이와 같은 원리로 변화한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만,
사람들은 여기에서 벗어나려고 서슴없이 "발광(發光)"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발광이라는 단어가 나쁜 말이 아님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해서"는 그것을 자기와 떨어지게 하지를 못하여서,
그 생각대로 전개를 해가면서 점차로 기쁨에 쌓아 가면서 일생을 마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생각에 갇혀서 괴로워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어떻게하지를 못하겠다"는
'다른 생각을 덧씌우게' 되어서 고통을 지어내어 겪다가 스스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두 경우를 각각 성공이라거나 실패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를 잘 살펴보기만 한다면),
어느 경우든 자기가 하는 생각과 떨어져 있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게도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일이 생기고 실패하든 성공하는 것은 생각을 일으키는 것에서 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렇게 창조가 되는 양상의 '작용의 시작'을 짚어볼 수가 있기도 합니다.
우리 각자는 한계를 알 수가 없을 만큼의 많은 능력을 지니고 이 세상에 왔습니다만,
그 능력의 대부분은 쓰지를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결정을 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지 못해서 (인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이것을 부려쓰거나 쓰지 않거나 하는 것은 자유의지에 따르는 것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사느냐?는 눈물겨울 정도로 다르게 드러나오게 됩니다.
이를 세개의 동심원의 구조로 예를 든다면 (안에서 부터 밖으로 나오면서),
몸을 기준으로 사는냐?
마음을 기준으로 사느냐?
영(순수의식)을 기준으로 사느냐?와
그 밖의 입장으로 있느냐? 는 모두 스스로가 결정하기 나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