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뭔가 좀 자리가 잡혀가는 느낌이다.
조금은 안정과 평안이 함께한다
오랜 기간을 바깥으로 만 찾으러 다니다가, `이렇게 해서는 결론을 얻는다고 해도, 내 결론은 아니겠구나`하는 생각을 굳혀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해보기로 결정한 다음, 주변 정리를 하느라 거의 일년을 보내고 합의가 되어서 홀가분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나는 중이다.
정말 뭔가 있기는 있는 것 같아서,
처음엔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여러 곳을 다니며` 한다는 이`? 들을 물어 물어 찾아서 물어도 보았고, 그 담엔 책이란 책은 다 뒤지다시피 훑어 보면서 수 많은 밤을 지새기도 하더니 ,어느 땐가는 공원 벤치나 나무 밑에서 신문지를 덮고 지나며 깨달음이 오기를 기다리며,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잊어 버리는 날들을 수없이 보냈다.
멀쩡하게 하던 선생노릇을 뛰쳐 나와서, 모두가 미쳤다고 상대도 안해주던 시절 이야기다. 우여곡절 끝에 여러가지 발명을 하여서 회사를 만들어 자리가 잡혀갈 즈음 어느날 갑자기 사무실에서 누가 찾아 오셨다는 전갈을 받았다.
나가봤더니 대구에 계셔야할 아버지가 거기에 계신 것 아닌가! 부자는 그렇게 6년만에 상봉을 한 것이다.`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못난 자식을 찾아서 그분은 그렇게 오셨던 것이다.
한 동안을 아버지와 아들은 부둥켜 안고 할 말을 잊은체 눈물만 흘리고 있었고, 가까이 있던 사원들은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한체 멀거니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다 상무님의 안내로 아버지는 처음으로 내 회사를 방문 하셨지만 든든한 후원자가 되신 것이다.
초기에 내 어설픈 구도는 이렇게 부모님을 비롯하여 주위 사람들에게도 많은 심려를 끼쳤다 .그 일이 있은 다음 생각지도 못했던 아버님의 적극적인 지지로 심적인 부담은 사라지게 되었고, 회사도 계속 성장을 하면서 편안하게 집안에 들어설 수가 있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들던 시기에는 친구와 친척, 모두가 떨어져 나가서 미친 놈이라고 손가락질 하더니, 회사가 커지면서 10년쯤 지나고 중앙지에 전면 광고를 몇 번 내고부터는 별의 별 전화가 다 오는 것을 보면서 `정말 모를 건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생각 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산업현장에서 활동을 하면서도 끈을 놓지않은 의식탐사 여정은 여러가지 체험들을 하게 하였고, 드디어 어느 날 문막의 공장에서 점심을 먹은뒤 아랫층 공장을 지나서 이층의 사장실을 둘러보고나서 남한강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는 3층에 서있었다. 삼천평 정도로 딴에는 제법 큰 규모의 내 청춘을 다 바쳐서 이룩한 것이었다.
그 때 지나간 세월들이 정말 파노라마처럼 떠 올랐다. 어릴 때의 망상같았던 아련한 기억에서 시작하여 지금 서있는 자리 까지의 생각들이 하나로 어우러져서 커다란 욕심 덩어리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지금 이 욕심이 더 세월을 지나면 내가 스스로 어떤 짓을 할지도 모르겠고, 그것을 책임 질 수 있을지 없을지를 누가 감히 알수가 있겠는가? 모두가 욕심 덩어리인 것을! 지금이 바로 때다! 당장 그만 두는 거다! 더 이상 내가하는 생각에 내가 끌려 다닐 수는 없다! 하고 결심을 했다.
바로 아래 2층의 사장실에 들러서 책상을 뒤져 보니 다행히 최근 발행의 인감 증명서가 있었다. 서울 본사에전화 연락을 했다. 지금 즉시 연락해서 오늘 저녘7시에 긴급 이사회를 소집 한다고!
욕심 덩어리와의 독립선언을 했다!
그렇게 하여 그날 저녘의 모임을 통하여 대표 이사직과 모든 권리와 함께 따르는 의무를 포기한채 빈손으로 회사를 나섰다. 타던 차까지 버려두고 버스를 타고올 때의 홀가분함이란! 이룩한 기쁨보다 더한 기쁨과 홀가분함은 그렇게 경험될 수가 있었다!
집안에 들어서면서 아내에게 회사를 무상으로 넘겼다는 얘기를 했다. 아내가 무척 당황해 했다. 그렇게도 힘들게 만들어 이제 뭔가 안정이 되어가는 싯점에... 생활비는? 뭘 해먹고 살지도 모르고... 아무런 각오도 대책도 없었다. 그냥, 그냥... 그리고는 푹 잤다.
다음 날 아침,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데, 왜 눈치를 보느냐?고 한다. 그렇지만 뭔가 각오를 한듯 차분하다. 오랫 동안 힘들고 바쁘게 살았으니, 이젠 쉬어 가면서 우리가 살아왔던 것을 사람들에게 얘기할 수도 있으니 다행 이라고 진심으로 격려를 해줬다. 진실로 고마움을 느꼈고 그 때쯤 밖으로만 향하던 관심들이 자신의 내면을 보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렇게 해서 95년 이후로 아내와 함께 아봐타 프로램을 안내하는 전업 마스터로 일하면서, 작년 8월이후 부터는 해탈에 버둥거리지않고 주변의 작은 것들도 재미있게 살펴 가면서 정말 자유롭게(? )맞고 보내며 살고있다.
자기 밖에는 아무런 실체도 없다.
자신에게 연연하지 않을 때 비로소 세상 속에서 편안하게 지내게된다.
정말 믿을수 있고, 믿을만한 것은 안에도 밖에도 없다.
모든 건 스스로가 그렇게 창조할 뿐이다.
나는 이 말들이 어떻게 들려서 해석되던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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